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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아 세기 백서 한국어 제외 “체계적 대응 필요”

한국교육원 0 10192
어바인 교장 “아시아 언어 중요”, “4개 언어로 제한은 어리석은 것”

아시안 세기 백서(이하 백서)에서 주요 4개 언어 중 한국어가 제외된 데 대한 논의를 위해 호주동아일보가 주최한 ‘아시안 세기 백서에 대한 한인사회의 대처 방안’좌담회가 지난 9일 호주동아일보 사옥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병일 한인회장이 한인 단체장으로서 참석했고 신기현 교수(UNSW), 박덕수 교수(시드니대), 유진숙 NSW한국어교사협회 회장, 양용선 린필드 한국학교 교장, 에스더 김 전 천주교한글학교 교감 등 한국어 교육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학부모 대표로는 김석원 호주동아일보 편집자문위원이, 호주 주류 사회 학교 관계자로는 캠시 초등학교의 필 어바인 교장, 젬마 헤이그 교감, 칼튼 초등학교의 모린 어바인 교감 등이 참석했다.

전경희 호주동아일보 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는 실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번 백서의 내용과 의미, 한국어 교육에 주는 영향, 향후 대책 등이 심도있고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공관대표가 참여하지 않아 이번 좌담회 내용 관련 공관의 입장은 11일 ‘2012 주호주한국대사배 바둑대회’에 참가한 조태용 대사와의 인터뷰로 대신했다. 좌담회 내용을 주로 다루되 관련 부분에 대한 공관의 입장은 인터뷰 답변을 삽입해 보충했다.

▶백서, 무엇이 문제인가?
백서는 정부 정책 기조를 설명한 무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문서이다. 이를 모두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비단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일반 한인들이 이를 정확히 숙지하기 힘들다. 김병일 한인회장은 “백서의 내용을 전문가들이 번역 및 해석해서 배포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본 기자는 조태용 주시드니대사와의 인터뷰 때 이를 제안했고 조 대사는 “좋은 생각이다. 대사관 인력 구조상 전문을 다 번역하지는 못 하더라도 한국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은 번역해 올리는 방안을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백서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정부의 전체적인 정책 방향을 설명한 문서로서 2025년을 기준으로 경제력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 국가를 호주의 파트너로 삼고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정치, 경제적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을 호주의 아시아 파트너 주요 5개국 중 하나로 선정해 놓고 의무교육 대상으로 선정된 주요 언어(priority language)에서는 한국어를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참석자들은 의문을 제기하며 어떤 근거로 주요 언어를 선정했는지 연방정부 측에서 설명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유진숙 회장은 백서 상에서 주요 언어를 선정할 때 ‘호주인들에게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언어’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돼있다고 지적하며 ‘한국도 충분히 기회를 줄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0년간 정부가 4개 주요 언어에 한국어를 포함시켰고 이로 인해 교재개발, 교사 훈련 및 확충 등이 잘 돼가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어가 도약하려는 상황에서 이번 백서의 내용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에스더 김 전 교감은 “호주 정부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로서는 자국민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언어를 주요 언어로 선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한국어를 배우면 무언가 기회가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이유를 알려달라는 편지를 작성해 관련 기관들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고 그 쪽에서 답변이 오면 그 답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다시 보내는 식으로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필 어바인 교장은 “정부가 작년에는 한국어가 한국어권 출신(background) 학습자들 뿐만 아니라 비한국어권(nonbackground) 출신의 호주 학생들이 배워야 할 좋은 언어라고 해 놓고 올해부터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결정을 내린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정부 스스로 이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 또한 이런 문의를 했고 아시안 태스크 포스에게서 처음 받은 편지에는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여전히 커뮤니티 언어에 자금 지원(funding)을 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덧붙였다.

어바인 교장은 “정책 결정자들이 실수했다는 걸 자각하고 교정토록 해야 한다”며 “왜 꼭 4개국만인가? 4개국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기현 교수도 “백서 안에 일종의 모순이 있다. 한 쪽에선 한국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선 언어가 빠졌는데 그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 어바인 교장의 지적처럼 저들이 답변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방은 불가능했는가?
지난 7일 있었던 총영사관 대책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정부 정책은 오류가 있다고 해서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서가 나오기 전 준비 과정에서 미리 손을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연방 정부에 이러한 영향을 끼칠 역량이 우리에게 없는 것인지 논의가 이루어졌다.

신 교수는 이번 결정 과정에 대해 연방 정부의 주요 컨설팅기관인 아시아교육협회(AEF)에서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공관에서 미리 알고 대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 조 대사는 “결정 과정에서 연방정부가 외국 정부의 의견을 수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사로서 이번 일에 대해 더 챙기지 못한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평소 한국을 알리기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신 교수는 연방 정부가 정책을 세울 때 컨설테이션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파악하기 힘들다며 “백서는 호주 정부의 정책이라 거기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아이디어들이 정책에 입안돼서 실행되는 상황에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정책이 정치적, 경제적 성향이 강해 특히 한국어 교육 부문의 한국 전문가와 기타 정부 교육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덕수 교수는 “장관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전혀 안 듣고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백서 문제와 관련해 공관, 기업체,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대의에 참석자들은 동의했다.

▶공론의 장, 네트워크 필요
연방 정부에 대한 질의 과정을 포함해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활동 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형성된 가운데 이를 이끌고 조정할 기관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었다.

김 전 교감은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다른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단체(혹은 협의회)를 조성해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 교수는 어떤 단체를 만들어 전체를 아우르기 보다는 각자의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방법론에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어 교육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네트워크를 조성할 필요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양용선 교장은 “어떠한 활동을 하든 투명한 대화가 필요하다. 공관이든, 한인회든, 학계든 전체적 의견을 알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요 중요
지난 영사관 대책회의에서도 지적됐듯이 한국어 수요, 그 중에서도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 초급반 수요가 늘어나야 하고 대입시험(HSC)에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장 교육 관계자들인 만큼 일선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제시됐다. 헤이그 교감은 “실제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 수요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NSW대학도 그렇고 우리학교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한국어를 선택하겠다고 손을 든다 (올해 36명). 한국어 프로그램이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 대상으로도 ‘할만하다(doable)’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진숙 회장은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 과정이 생기는 학교들을 보면 먼저 한국어권 출신 학습자가 생기고 그 영향으로 비한국어권 출신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권 출신과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그만큼 문화적인 노출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덕수 교수는 “5-6년전 한국어 프로그램이 유예(suspend)되면서 한국어 교육 관계자들이 NSW교육이사회(Board of Studies)에 가서 얘기할 때 이사회 측 얘기가 ‘언제든지 수요(demand)를 보여주면 다시 열겠다’고 했다. 수요를 늘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석원 위원은 한인 학부모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한국어 수요’를 늘리는 방안은 더 모색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주장대로 먼저 수요를 늘려야 지원하겠다는 논리에 끌려가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분위기에서는 한국어 과목 학생이 유지되거나 크게 늘어날 확률이 적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도리어 이 분위기를 일신할 선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호주가 한국의 중요성을 정말 인정한다면 정치적 결단을 통해 선투자를 해야 더 많은 수요, 더 많은 지원이라는 선순환구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언어 중시’는 바람직
한국어 제외로 백서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어바인 교장은 긍정적 측면도 있으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담회 내내 그는 “백서는 훌륭하다. 한국어가 제외된 것만 빼고는..’이라고 수차례 지적했다. 그는 “호주 어린이들에게 아시아 언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백서의 접근법(approach)은 훌륭하다. 일단 호주인들 사이에 이러한 인식이 생기면 학교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지역사회에 어필할 수 있다”며 “넓게 보면 백서가 성공해야 한다. (언어교육에 대한 백서의) 메시지는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어가 (언어 교육의) 파이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사는 “한국과 호주사이의 관계가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고 긍정적으로 발전해왔는데, 결코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호주 교육부에서도 첫 번째 방향을 잡을 때 한국어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현재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 여러 가지 지원이나 시스템이 한국어 교육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백서 실행과정에서 정책 각론을 만들 때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개 언어 제한 부당’ 지적
참석자들은 백서에서 한국어보다 수요가 적은 힌두어를 넣은 배경을 강조해서 연방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그 보다는 ‘주요 국가는 5개인데 주요 언어는 왜 4개인가’ 혹은 ‘왜 주요 언어를 4개로만 제한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연방 정부에 한국어 주요 언어군 제외의 이유에 대한 근거를 묻는 서한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보내 정책 개발자 스스로 백서의 모순을 느끼게 만들고, 세부 정책이 마련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한국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어 수요(특히 비한국어권 출신 학습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 현재의 한류를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점(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등이 지적됐다.

각 참석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바인 교장은 한국을 방문했던 교장단과 함께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고 신 교수는 “정부 스스로 그동안 한국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으면서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병일 회장은 “한인회 차원에서 전문가와 상의해 서한을 마련한 후 정확한 경로를 찾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기운 기자
freedom@hojudonga.com